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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노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딜레마랜드 - 교육자료실 [뇌과학사에 영원히 기억될 엔그램을 남긴 'H.M.']

뇌과학사에 영원히 기억될 엔그램 남긴 ‘H.M.’

                                                                                                    (1926~2008)

                              글_정민환 아주대학교 의과학연구소 교수 min@ajou.ac.kr


  2008년 12월 2일, 미국 동부 코네티컷 주의 한 요양소에서 한 남자가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일제히 고인의 사망소식을 보도했으며, 국내 언론에도 비중 있게 소개되어 아마 많은 독자들이 이 사람에 대해 들어 보았을 것이다.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그의 사망소식이 전세계적인 뉴스가 되었을까? 그는 단지 젊어서 뇌수술을 받았고 그 이후 과학자들의 연구에 성실히 협조한 환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사람으로 인해 뇌과학의 역사는 달라졌으니, 뉴욕 타임즈는 부고에서 뇌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환자가 사망했다고 보도하였다.

 

 

H.M. 증상 통해 뇌의 기억 담당 부위 확인
고인의 이름은 헨리 구스타프 몰레이슨이며 그동안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머리글자를 따서 ‘H.M.’으로만 알려져 왔다. H.M.은 9살 때 자전거에 머리를 부딪친 후 심한 간질 증세에 시달림을 받았는데, 수술 받을 당시는 증세가 심해서 하루에 한번 이상 의식을 잃을 정도의 발작을 일으켰었다. 27세에 이르러 결국 뇌수술을 받았는데 이 수술로 인해 H.M.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게 된다. 수술 이후 간질 증세는 크게 완화되었으나 H.M.은 자신이 경험한 사실들을 기억하는 능력이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른 기능들은 거의 이상이 없었다. 즉 감각, 운동, 언어, 지능, 단기기억 등 여타 기능은 정상이며 과거의 오래된 기억들도 유지가 되었으나 새로운 경험들을 기억하는 능력만 소실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의 단골소재로 등장하는데 잘 알려진 예로 ‘메멘토’를 들 수 있다.
H.M.의 증상은 뇌에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가 따로 존재함을 알려준다. H.M. 이전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기억은 뇌전체의 기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예로 쥐의 대뇌피질을 다양한 조합으로 손상시켰을 때 대뇌피질의 손상위치와 학습행동과는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대뇌피질이 전체적으로 얼마만큼 손상되었느냐에 따라 학습행동이 저해되었는데, 칼 래슐리 박사는 이 실험결과에 근거해 기억은 대뇌피질 전체에 걸쳐 저장된다고 제안하였다. 이에 반해 H.M.의 경우는 기억과 기타 뇌기능이 완벽히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따라서 기억을 담당하는 뇌부위가 따로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때 고려할 점이 H.M.의 경우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같이 오래된 기억은 정상인과 같이 잘 보존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새로운 기억의 형성에 관여하는 뇌부위와 오래된 기억을 최종적으로 저장하는 뇌부위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H.M.은 해마를 포함해 내측측두엽 부위를 절제했기 때문에 이 부위가 새로운 기억의 형성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기억의 형성과 저장이 분리되어 처리되는 것일까? 현재의 정설에 따르면 기억은 해마에 일단 빠르게 저장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응고화 과정을 거치며, 이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신피질에 기억이 저장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억이 응고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H.M.의 경우도 수술 전 대략 3년 전까지의 기억을 망각하였다. H.M.이 좋아하던 삼촌이 수술 전에 사망했는데, 수술 후 이 기억이 망각되어 삼촌의 사망소식을 들을 때마다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이렇게 기억이 이중구조를 가지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생각해보면 매우 타당성이 있다. 만약 모든 경험을 장기기억으로 보존한다면 대부분 쓸모없는 정보를 평생 저장하는 꼴이 될 것이며 뇌는 용량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경험이 나중에 유용할지 바로 판단하기는 힘들므로 기억할 것과 버릴 것을 순간순간 구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때 기억의 임시저장소가 있으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경험된 사실들을 임시저장소에 보관하면서 자주 사용되는 정보와 같이 유용한 정보들만 추려서 장기기억으로 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매일 자가운전으로 출근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퇴근할 때 까지 주차장의 어느 특정장소에 주차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매일 매일의 이런 정보를 평생 기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장기기억에는 내가 어떤 회사를 다녔고, 자가용으로 출퇴근 했다는 일반적인 사실만 저장하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경험이 장기기억으로 응고화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경험지가 축적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인격과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어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H.M.이 잃어버린 것은 기억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아이덴티티일 것이다. 즉 그는 평생 27세에 머물러 살다 인생을 마감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기억에는 여러 종류 존재’도 밝혀져 
  H.M.에 의해 밝혀진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기억에는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H.M.은 새로운 학습을 전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울을 보고 따라 그리기, 각종 퍼즐 풀기와 같은 과제를 정상인과 비슷하게 학습하였다. 자신이 이러한 과제를 배웠다는 사실은 전혀 기억을 못하면서도 ‘생각보다 쉽네요’라고 말하면서 수행은 아주 잘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 결과는 두 가지 중요성을 지니는데 첫째, 앞서 말한 H.M.의 기억문제는 간질로 인한 뇌의 전반적인 기능저하 때문이 아니라 내측 측두엽 절제 때문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며, 둘째, 기억에는 한 가지 이상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추후 연구를 통해 사람과 동물의 기억에는 여러 다른 형태가 존재하며 각각 담당하는 뇌부위들이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기억은 대개 사람의 얼굴, 어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일상용어에서 말하는 기억인 선언적 기억과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과 같이 우리가 ‘기억한다’라기보다 ‘배운다’라고 말하는 기억인 절차적 기억으로 크게 분류된다. 사실 이러한 분류는 H.M. 이전에 이미 철학계에서 제기된 바 있다. 언어분석 철학자인 길버트 라일은 ‘마음의 개념’이란 책에서 서양장기를 예로 들면서 ‘무엇’에 대한 지식과 ‘어떻게’에 대한 지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기억의 다양성을 실증적으로 증명하였고 이후 기억연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H.M.에 대한 연구결과이다.
현대 기억 연구의 시발점은 H.M.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시냅스 가소성의 발견과 신경망 연구의 성과로 인해 우리는 기억의 저장과정을 뇌신경회로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인해 기억의 분자적 메커니즘에 대한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였고, 이제는 기억을 선별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용인되는가를 활발히 논의할 정도로 연구가 발전하였다. 다양한 고위뇌기능 중 우리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학습 및 기억이며, 이러한 지식의 진보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을 한명 꼽으라면 아마 H.M.이 될 것이다. H.M.은 기억을 잃었지만 뇌과학사에 영원히 기억될 엔그램(기억의 흔적)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글쓴이는 서울대학교 동물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캘리포니아대학교(어바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월간 과학과 기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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