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해
히틀러는 “담배는 백인이 독한 술을 준 데 대한 인디언의 복수”라며 흡연을 철저히 금했다. 하지만 이런 절대적이고 강제적인 방법으로는 글쎄……. 2차 대전 중 히틀러는 실내흡연에 이어 야외흡연까지 금하는 법을 실시하기까지 했지만 실상 당시 독일은 유럽의 최대 담배 수입국이었다. 담배와 이별을 고하는 것에도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물론 번개 맞은 듯한 일순간의 충격으로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치한 취급을 당하다 회사원 유영필 씨. 하루 한 갑씩 담배를 피우던 그의 손에는 담배 대신 칫솔이 들려 있다. 어느 날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의 뒤통수로 “까악~” 하는 여성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바람이 불면서 담배연기가 뒤에 오던 여성들의 얼굴을 강타한 것. 창피함으로 얼굴이 붉게 물든 그는 바로 금연을 결심했다. ‘에잇, 이렇게 피울 바에야 아예 끊어버리자!’
1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일순간 끊겠다고 결심한 바탕에는 거리에서 치한 취급을 당한 데 대한 창피함과 치욕스러움이 있었다. 비명소리의 근원이 자신의 담배연기였음을 알게 되자 너무 창피해서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는 그. 그날 이후로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마다 칫솔을 들고 화장실로 달려가 양치질을 하고나면 담배 생각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루에 5~6번 정도 양치질을 하러 화장실에 가는 게 귀찮을 법도 하지만 오히려 그동안 담배 피우러 일어나던 시간보다 시간소모도 덜 되고 생각보다 귀찮지 않다고. 요즘 그의 가방엔 담배 대신 칫솔과 치약이 들어 있다.
담배 생각이 날 때면 언제든 화장실로 달려가 양치질을 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그의 별명은 이제 ‘미스 유’다. 금연한 지 7개월,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놀리던 지인들도 이제는 그의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생애 마지막 담배를 애도하다 소설가 김영하는 단 한 번의 시도로 금연에 성공했다. 그는 “금연을 선언한 후 많은 흡연자들이 의식을 치르듯 담배를 부러뜨리거나 재떨이를 버리는 등 오랫동안 흡연자의 벗이었고 고통과 기쁨의 순간을 함께한 인생의 동지였던 담배에 대해 적개심을 불태우는 것은 상대에 대해 예의없는 처사”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담배 한 보루를 사서 그 담배를 다 피우면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 한 개비를 피울 때마다 담배와 함께했던 모든 추억들을 되새겼다. 담배가 줄어들 때마다 이별해야 한다는 아쉬움과 슬픔은 커갔지만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는 그.
생애 마지막 담배를 피우던 날, 창문을 활짝 열고 하늘을 내다보며 “담배여, 그동안 너와 함께 즐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다하였다. 나는 너 없는 인생을 살아볼 작정이다. 이제는 헤어져야 하겠다. 내 사랑하는 폭군이여 안녕!”이라고 말했다고. 때로 금단증상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는 금연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한순간 매정하게 정리하면 항상 그 결말이 좋지 않다. 이 같은 이별의식을 통해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벗, 담배에게 안녕을 고한 김영하식 금연법도 시도해볼 만하지 않은가.
내 몸을 귀하게 대접하라 《오리진이 되라》의 저자 강신장은 최근 30년 넘게 피워오던 담배와 이별하는 데 성공했다. 그 비결은 자신의 몸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 이는 몇 년 전의 경험이 준 깨달음이다. “몸을 먼저 귀하게 대접해주면 몸이 정신을 차리고 마음은 그에 따라 절로 변하게 된다”는 어느 기氣수련원 원장님의 말을 듣고 그곳의 프로그램을 체험하면서 정말 자신의 몸을 보듬어보게 됐다고.
머리끝에서 얼굴, 목, 겨드랑이, 허리,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까지 평소 손길 한번 안 주던 곳을 구석구석 주무르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얘들 너무 안됐다. 주인 잘못 만나서 근육은 하나도 없고…… 그동안 너무 함부로 썼구나.
이렇게 해서는 내가 정말 소중한 걸 잃어버리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엄청난 골초였던 그는 자신을 돌보지 못한 자기반성과 함께 몸에게 미안해서 자진해 흡연을 중단했다고 한다.
살아남으려면 끊어라: 금연을 권하는 기업문화 이제 담배는 개인의 건강차원뿐만 아니라 생존하려면 끊을 수밖에 없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기업들이 직원들의 흡연을 문제 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이태전 구미사업장을 시작으로 실외 지정된 장소에 한해 점심시간이나 일과후에 흡연을 허용해왔으나 올해부터는 모든 사업장에서 금연을 실시한다. 삼성의료원 역시 2008년부터 병원 내 모든 구역에서 금연을 실시한 이래 삼성코닝정밀소재, 삼성전기 등 삼성의 주요 계열사로 금연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91년 국내 기업 최초로 모든 사업장에서 금연을 실시했을 정도로 대표적인 금연 기업이다. 2005년부터 사내 금연을 위해 애써온 포스코는 2009년 ‘흡연율 제로 기업’을 선포하고 금연을 강력하게 실시해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2008년 30%에 달하던 흡연율이 지금은 거의 제로 수준에 가깝다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국립암센터로부터 ‘2010 금연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포스코, 웅진, 롯데백화점 등은 흡연자에게 승진 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 한국화이자제약은 지난해부터 ‘제약회사 직원부터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회사방침에 따라 금연을 질병으로 보고 본사에 ‘스톱 스모킹 클리닉’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금연 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도 현대상선, 하나은행 등은 금연펀드를 조성해 직원들의 금연을 유도하고 있다. 기업뿐 아니라 1999년 국내 최초로 세워진 삼육대학교 단연클리닉을 비롯해 광운대학교, 영남대학교 등 대학들에서도 학생들의 건강과 취업을 위해 금연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추세다.
금연이 곧 세계화 선진국을 중심으로 금연의 세계화가 진행 중이다. 영국은 2007년부터 담배를 살 수 있는 법정 연령을 16세에서 18세로 높이고 밀폐된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금지했다.
홍콩은 식당, 술집 등 모든 실내 사업장뿐 아니라 운동장, 해변, 체육관, 공원 등 전국 50만 곳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사실상 자신의 집이 아니면 흡연할 곳이 없는 셈이다.
세계에서 담뱃값이 가장 비싼 캐나다는 2001년 세계 최초로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도입했고, 담배 판매점은 청소년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만 담배를 진열하도록 했다. 또 실내 공공장소에서의 금연도 금지하고 있다.
캐나다를 비롯해 브라질, 싱가포르, 태국, 베네수엘라, 요르단, 호주, 우루과이, 칠레, 홍콩, 뉴질랜드, 영국, 인도, 스위스, 이집트 등 2010년 기준 27개국에서는 담뱃갑에 흡연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이미지를 부착한 금연광고를 시행 중이다.
애연가들의 천국 프랑스도 2008년부터 카페와 레스토랑, 바 그리고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었다. 애연가들의 반대가 막대했지만 금연의 세계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일본은 2001년 도쿄에서 지나가던 어린이가 행인의 담배 불똥으로 얼굴에 화상을 입는 사고가 나면서 2002년부터 도쿄 지요다구에서 길거리 흡연을 전면 금지했다. 부탄의 경우 2004년 세계 최초로 국내의 담배판매를 금지한 데 이어 2008년에는 금연국가를 선포하는 등 각 나라의 금연정책은 더욱 활기를 띄고 있다.
글·정소현 nalda98@brainmedia.co.kr
[출처] 브레인월드 > 기획기사 >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해
http://www.brainmedia.co.kr/PlannedArticle/6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