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올해 삶의 질 순위는 세계 194개국 중 42위로, 지난해 32위에서 10계단 떨어졌다고
아일랜드의 생활정보잡지 <인터내셔널 리빙>이 보도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행복지수를 기준으로 세계
주요 30개국의 행복지수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한국은 최하위 수준인 25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적인 조사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과 사회의 흐름, 생활의 형태 등만 봐
도 한국인의 삶의 질에 문제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한국은 갈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고,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게다가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른들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OECD국가 중 어린이의 행복지수가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소득의 양극화와 행복지수의 관계는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다고
여기는 경제학의 관점만 가지고 본다면 해결될 수 없는 난제이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
분야에서는 ‘사람의 뇌는 경제적인 평등을 선호한다’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불평등을 불편해 하는 뇌●●●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와 아일랜드 트리니티대 공동 연구진은 2010년 2월 과학학술지 <
네이처>에 “사람의 뇌는 부익부 빈익빈을 피하고 어느 정도는 부를 나눠 갖는 것을 선호
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4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는 50달러를, 다른 그룹에게
는 아무런 보너스도 주지 않아 인위적으로 부유한 그룹과 가난한 그룹을 만든 후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들 40명에게 첫 번째 시나리오로 ‘같은 일을 해도 당신은 50달러를 받지만 다른 사람은
20달러만 받는다’고 말해주고, 두 번째 시나리오로 ‘이제 당신은 5달러를 더 받을 것이고
다른 사람은 50달러를 더 받을 것이다’라고 알려줬다.
그러는 동안 실험 참가자의 뇌의 반응을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촬영했다. 결과
는 예상 외였다.
부유한 그룹은 자신이 돈을 받을 때보다 가난한 사람이 돈을 받을 때 뇌의 복내측전전두
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과 복측선조(Ventral Striatum)가 활성화됐다.
이곳은 ‘보상계’라고 하여 음식이나 돈을 받거나 즐거운 음악을 들을 때, 칭찬을 받을 때
활성화하는 곳이다.
놀라운 점은 이 긍정적 반응이 원래 50달러를 가지고 있던 부유한 그룹의 사람이 자신이 50
달러를 추가로 받아 100달러 부자가 될 때보다, 원래는 20달러밖에 없던 자신에 비해 가난
하던 사람이 50달러를 받아서 최종 70달러로 자신(최종 55달러)보다 더 부자가 될 때 더욱
강한 반응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 가난한 그룹은 자신이 돈을 받을 때에만 이 부위가 활성화됐다. 결국 부자도 혼자 독식
해서 불평등이 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자신의 손해가 너무 크지 않다면 평등을 좋아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아이들도 평등주의자 ●●●
2008년 8월 <네이처>를 보면 아이들이 사탕을 나눠 가지는 방식을 선택하도록 한 실험에서
3세~4세의 연령에서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자기만 사탕을 갖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반면, 7세~8세 사이의 연령에서는 상대방도 사탕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하였다.
3세의 두뇌는 자기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시기이고, 뭐든지 ‘내 거야’라고 우기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아이들은 불평등한 것을 제거하려는 선택을 하는 평등주의자가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상대방에게 주는 걸 선택하는 게 아니고, 자기랑 같아지는 한도 내에서
주기를 원한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독일 ●●●
사람의 뇌가 경제적 평등을 선호한다는 결과가 현실성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잘 살펴보면
선거 때마다 세금 정책을 내놓으면서 부의 재분배를 도모하고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치가가 나오고, 정당은 이러한 정책을 바탕으로 지지층의 결집을 도모
해왔다.
독일에서는 지난해 가을 무렵, 44명의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겠다고 웹 사이트를 통해
청원운동을 벌이고 나서 화제가 됐다.
전직 의사인 디터 케름쿨(66)은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부자들이 나라를
도와야 할 때가 됐다”면서 50만 유로(한화 약 9억 원) 이상의 개인 재산을 가진 독일인 2백
20만 명이 올해와 내년에 5%의 재산세를 내면 1천억 유로의 국가 세수가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 환경과 같은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할 때는 없었던 돈이 은행 구제와 경기 부양을
위해 갑자기 막대한 예산으로 쏟아지는 것을 보고 미칠 지경이었다”며 미국 시민단체인 ‘공
정경제연합(UFE)’ 같은 조직을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UFE 산하 모임인 ‘책임지는 부자(RW. Responsible Wealth)’에는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테드 터너, 폴 뉴먼 등 미국의 대표적 거부들이 참여해 상속세 폐지 반대, 공평
과세, 최저 임금 인상,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확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질랜드 웰링턴에 사는 샘 모건(32)이라는 사업가는 뉴질랜드 조세제도가 자신과 같은
부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상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고 현지 신문이 지난 4월 21일 전했다.
1999년 ‘트레이드미’라는 뉴질랜드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만든 그는 7년 뒤 호주 언론재벌
페어팩스에 트레이드미를 7억 달러 이상을 받고 팔아 자신의 몫으로 최소한 2억2천700만
달러를 챙겼다고 한다. 모건이 거머쥔 거액은 사업체를 팔아서 생긴 돈이기 때문에 법률상으
로는 세금을 낼 필요가 전혀 없는 돈이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소년처럼, 불평등으로 인해 자신의 뇌가 불편해 하는 것을 인정
하고 부의 재분배에 관심을 갖는 부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단지 부자들의
심리적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들의 뇌가 선택하기에 달렸다.
출처 : 브레인미디어 글·강윤정 chiw55@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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