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생물학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최근 과학자들은 사랑, 신뢰, 심지어 자아의 개념에 대한 신경생물
학적 토대를 밝혀내고 있다. 클레어몬트 대학원의 폴 자크 박사팀은 일상생활에 고루 영향
을 미치는 신뢰에 대한 문제를 탐구했다. 하지만 인간이 서로를 신뢰하게 하는 신경생물학
적인 기제까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 자크 박사팀은 누군가 자신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체의 옥시토신
이라는 호르몬 수치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신뢰의 강도가 강할수록, 옥시토신은
더더욱 증가하고 게다가 옥시토신 수치가 올라갈수록 해당 당사자는 한결 더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쟈크 박사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실험에 참가한 사
람들은 왜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그들의 뇌가 그들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 즉, 신뢰할 만한 방향으로 행동하도
록 안내했다는 것이죠. 이것은 인간이 사회적인 신호를 절묘하게 받아들여 이를 해석하고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번 결과의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실험에서 신뢰를 측정하는 척도로 금전의 이동을 이용
했다는 것과 실험의 모든 과정이 얼굴을 마주보지 않은 채 컴퓨터 상의 통신만으로 진행되
었다는 점이다. 즉,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매개로 실제 현금을 사용한 것이
다. 참가자들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는 신호로 자신이 번 돈을 보냈는데 이 때, 돈
을 보내는 사람은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혹은 그가 무엇을 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
다.
실험방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모집된 참가자들은 실험에 참석하는 대가로 10달러를
받았다. 그리고는 큰 컴퓨터 연구소에 마련된 자리에 각자 짝을 지어 앉도록 했다. 이 과정
은 철저히 익명으로 진행되어 참가자들끼리는 자신의 짝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는 실험 참가자 중 반(첫번째 결정권자)은 자신의 짝에게 마음대로 참가비로 받은
10달러를 보내거나 또는 그 중 일부를 보내거나 아니면 보내지 않을 수도 있는 기회를 주
었다. 만일 현금을 보냈을 때 보내진 돈은 모두 3배로 환산되었다. 가령 한 참가자가 신뢰
의 표시로 4달러를 보냈다면, 상대편은 이 금액의 3배인 12달러에 참가비 10달러까지 더해
22달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첫번째 금액이 전달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받는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두번째 결정권자)이
반대로 돈을 보내는 입장이 되어 같은 방식으로 신뢰를 표현했다. 이런 방법으로 연구진은
신뢰에 대한 사회적 신호를 재현해냈다. 연구진은 모든 참석자들에게 첫번째 송금액이 세
배가 되며 거기에는 어떤 속임수도 개입되지 않는다고 미리 알려주었다. 따라서 첫번째 결
정권자들이 상대에게 돈을 보내는 이유는 대체로 상대방이 돈을 보내는 이유를 이해하고,
반대로 얼마간 돌려주리라는 기본적인 신뢰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각각 자신의 결정대로 이행하고 나면, 그들은 다른 방에 옮겨져 정맥에서 4테이블
스푼 가량의 혈액을 뽑도록 했다.
옥시토신은 임상 실험에서는 거의 연구된 바 없는 호르몬이다. 동물실험에 의하면 옥시토
신은 사회적 인정과 연대감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미가 새끼에게
느끼는 애착이나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종족의 가족관계에서 남녀간의 결속력 같은 것 말이
다.
연구팀은 동물실험 결과들을 토대로 이번 신뢰실험에서 나타난 현상에 대해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짝과 일시적인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것
이 우리가 찾아낸 결과입니다. 신뢰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옥시토신이 증가했고, 그것
이 다시 믿음직한 행동으로 이어진 거죠. 척박한 연구실 환경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
은 놀라운 일입니다. 실제로 얼굴을 마주보는 상황에서는 옥시토신의 영향이 휠씬 더 클 것
으로 예상됩니다.”
그는 또한 배란기 여성의 경우 똑같은 강도의 신뢰에도 휠씬 반응을 적게 나타낸다는 사실
을 발견했다. 이는 프로테스테론과 옥시토신의 생리학적 상호작용에 의한 것인데 이는 행
동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는 반응이다. 임신 중이거나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사회적
신호를 해석할 때 휠씬 더 까다로워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시기보다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현재 자크 박사의 연구팀은 신경이 손상된 환자들의 신뢰에 대한 생리 반응뿐 아니라 신뢰
를 받은 사람들의 뇌 활성화 패턴을 연구하고 있다. 신뢰는 우리의 일상에서 본질적인 부분
이다. 단순히 거리를 활보하는 일에서부터 일상생활에서 운전하는 것까지 두루 영향을 끼
치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신뢰의 신경생물학적 기제를 밝혀내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아주 중요한 점을 밝혀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이
며 사회적 신뢰의 신호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이런 신호들을 의
식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그에 부응하여 행동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의 뇌
는 ‘옳은 일’을 하도록 안내해주는 내재된 나침반과 같은 것이 아닐까.
출처 : 브레인미디어 글. 뇌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