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무의식 사이
아직 현대과학이 해결해내지 못한 대표적인 과제는 뇌와 마음의 연결 고리이다.
그중에서 뇌와 의식의 연구는 가장 난제로 알려져 있다. 영어로 의식을 나타내는
‘consciousness’란 단어는 라틴어로 도덕적 양심을 뜻하는 ‘consientia’에서 유
래된 말이다.
의식 상태란 보통 자기 자신이나 사물을 인식하고 있는, 주관적이고 지적인 지각
상태를 일컫는다. 반면 무의식 상태는 깨어 있지 않은 상태로서 수면 시 또는 마
취 및 뇌사 상태에서 흔히 나타난다. 최대난제인 의식의 문제가 철학, 심리학, 물
리학, 뇌과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제 간 융합 연구의 주요 대상으로 부
상하고 있다.
아직은 어렵기만 한 의식의 문제
초기 연구자들은 의식을 자연계의 물질적인 실체와는 다른 정신적인 것으로 여
기고 마음의 관찰을 통해 의식의 보편적 작동원리를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의
식이 뇌의 기능과 상호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져왔다.
각성도 또는 반응성으로 구분되는 의식의 단계들은 뇌파EEG라고 부르는 뇌의
전기 신호 패턴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깨어 있는 상태는 빠르고 불규칙하며
작은 진폭의 뇌파 파동을 보이는 반면, 수면 시에는 느리고 큰 진폭의 파동이 비
주기적으로 기울고 차는 뇌파 패턴을 보인다.
의식의 측면 중 가장 어려운 개념이 ‘퀄리아qualia’, 즉 ‘빨강이 얼마나 빨갛고,
고통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와 같이 숫자로는 환산할 수 없는 차이를 인식하는
뇌의 기능의 문제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이 뇌의 활동 결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아직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대신 인과율적인 측면에서 최소한
의 신경활동으로부터 ‘신경과학적 의식의 근거(NCC:Neuron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를 찾으려는 노력이 최근 뇌과학의 주요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
경쟁과 연합이 만드는 의식의 블록
뇌의 전체적인 활동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체계로 ‘소인Homunculus’ 가설이 있
다. 주로 뇌의 후두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각활동을 지켜보는 ‘또 다른 나’가
뇌의 앞쪽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
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는 하지만, 현대과학적인 관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반면 최근의 뇌에 대한 연구는 의식을 ‘경쟁적 연합’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뇌의 대뇌피질에 있는 수많은 신경소자의 순간적인 연합과 이들 간의 경쟁에
의해 의식의 스냅 샷snap-shop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원숭이에 대한 실험에
서도 선택적 집중(selective attention)과 같은 고도의 인식기능이 신경세포 집단
간의 경쟁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어떻게 시끄럽고 혼잡한 상황
에서도 원하는 사람과 말에 집중할 수 있는가에 관한 ‘칵테일 파티 문제(cocktail
party problem)’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소음 속에도 상대의 말이 들리는 것은 여
러 자극을 처리하는 신경세포 집단 간의 경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좀비모드 vs. 정상파동
뇌에서 연합에 참여하는 신경세포들은 서로 간의 활동을 직간접으로 도와주며
역동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매순간 치열한 경쟁에 이기는 연합이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되며, 의식의 블록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합의 크기와 성질은
매순간 달라진다. 또한 뇌가 깨어 있을 때, 꿈꿀 때 또는 무의식 상태에 따라 연
합의 모드가 달라진다. 의식의 동역학은 마치 무수히 많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정치적인 연합을 통해 보수와 진보의 거대한 역동적인 흐름이 전개되는 것과도
유사하다.
외부의 감각 자극에 대해 뇌는 대개 빠르고, 일시적이며, 전형적인 무의식 반응
을 보인다. 이 경우 정보는 주로 뇌에서 한쪽 방향으로만 전파되는데 의식 연구
의 대표적 석학인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과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
박사는 이를 일종의 ‘네트워크 파동’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뇌의 상태
는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되살아난 시체, ‘좀비’ 모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의식
상태의 뇌의 경우 좀 더 느리고, 광범위한 목적을 가지며 덜 전형적인 반응을 보
인다. 이때 뇌의 정보 흐름은 앞쪽과 뒤쪽으로 쌍방향으로 전개되며, 일종의 ‘정
상파동’ 상태를 가지게 된다.
언제쯤 의식의 비밀이 밝혀질까
의식 연구의 경우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인 과제가 많지만, 과학적 탐구에 대한
윤리적 한계도 예상된다. 과연 의식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도출할 수 있는가?
동물의 의식은 인간과 비교하여 어떻게 다른가? 태아의 경우 의식의 발생 시기는
언제로 보아야 할까? 집단의식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과연 기계가 의식 수
준을 어느 정도 보유할 수 있을까?
의식에 대한 과학적 탐구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으며, 위 질문에 대한 만족
스러운 답을 주기에는 아직 이르다. 의식에 대한 연구는 현재 많은 가정에 의존
하고 있으며, 과학적 체계를 쌓기 위한 기반이 크게 부족하다. 최근 분자생물학
의 인간 유전자 지도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사람의 유전자의 전체
블루 프린트를 밝혀내었다.
이제 신경해부학과 신경정보학에 대한 대규모 장기 투자와 연구를 통해 뇌의 전
부위를 망라하는 상세한 뇌 지도의 제작과 네트워크 차원에서의 뇌의 이해가 요
구된다. 언제쯤 뇌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진보를 통해 우리의 내면세계 깊숙이
자리한 ‘의식’의 비밀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출처 : 브레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