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의 이유 있는 항변
재미있는 두뇌 상식 브레인 vol.12
국회에서 최근 ‘국회 본회의장 공조 설비에 대한 용역 조사’를 실시했다. 국회 본 회의장의
실내 온도, 습도, 세균 등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으로, 이번 조사가 제기된 속내를 들여다
보면 국회 본회의장의 환기 시설이 노후되어 실내 공기 중 산소가 부족한 탓에 국회의원
들이 자꾸 하품을 한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국민의 부름을 받고 앉아 있는 자리에서
조차 참아내기 힘든 하품은 과연 산소가 부족해서일까?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하품
의 이유 있는 항변을 들어본다.
산소통을 부여잡고도 나오는 하품
입이 벌어지고 얼굴이 일그러지며, 과하면 그렁그렁 눈물까지 자아내는 하품은 엄마 뱃속
의 태아, 사바나 초원에서 뒹구는 사자에게서도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이런 하품은 그간 산소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아왔다. 체내에 쌓인 피로 물질을 배출
하려면 충분한 산소가 필요한데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품을 해서 보통의 호흡보다
더 많은 양의 공기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탯줄에서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
는 태아와 무한 산소의 보고인 초원지대에서 사자가 하품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그
이유가 뭔가 충분치 않다.
오랫동안 하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메릴랜드 대학의 심리학과 로버트 프로바인
Robert Provine 교수는 실험을 통해 산소가 부족해 하품을 한다는 것이 근거가 없음을
밝혀냈다. 이 실험은 먼저 사람들이 보통 상태에서 하품하는 횟수를 측정했다. 그리고
산소가 풍부한 방과 부족한 방을 만들어 각기 다른 방에 있는 검사 대상자들이 얼마나
하품을 자주 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산소가 풍부한 방에 있는 이들은 평상시와 같은
빈도로 하품을 했다.
한편, 보통 상태보다 백 배가 넘는 농도의 이산화탄소가 들어 있는 방에 있던 이들 또한
평소와 비슷한 횟수로 하품을 했다. 실험은 하품을 하는 원인이 산소나 이산화탄소의
양과는 크게 관련이 없음을 말해주었다.
뜨거워진 뇌는 각성하라, 하품하라!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중요한 시합에 출전을 앞두고 곧잘 하품을 하며, 낙하산병들은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하품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쟁의 참호 속 군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삼엄한 상황에서도 하품을 한다. 하품은 잠이 오거나 지루함을
느낄 때 나온다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극도의 긴장 상태, 심한 두려움을 느낄 때도 발생
한다.
한편, 하품은 차가운 공기를 뇌에 공급하고 뇌의 열을 식혀 집중과 각성 상태를 유지하려
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뉴욕 주립대학 고든 갤럽Gordon Gallup 박사는
과학 전문지 〈에볼루셔너리 사이콜로지Evolutionary Psychology〉에 실린 연구 논문에
서 하품은 코로 들이마신 신선한 공기로 비강의 혈관 온도를 떨어뜨리고, 차가운 혈액을
뇌로 전달해 뇌를 각성시키며, 주의력을 개선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갤럽 박사는 관련 실험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하품하는 장면의 비디오를 보여주고 각각
다른 방법의 호흡을 하게 했다. 입과 코로 하는 호흡, 입으로만 하는 호흡, 코로만 하는
호흡, 코마개를 꽂고 입으로만 하는 호흡 중 한 방법으로만 숨을 쉬도록 하고 각각에
따른 하품의 빈도를 관찰했다. 보통의 호흡 또는 입으로만 숨을 쉰 경우 절반가량이
하품을 한 반면 코로만 숨을 쉰 사람은 아무도 하품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 그룹에는 온습포를, 다른 그룹에는 냉습포를 이마에 올려놓고 비디오를 보게
하는 실험에서는 온습포 그룹에서 하품이 더 많이 나왔다. 뇌의 온도가 올라가면 하품을
통해 뇌에 차가운 혈액을 공급함으로써 뇌 기능이 적정하게 유지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론이다. 하품은 정신을 바짝 차리겠다는 뇌의 의지의 표현으로, 무례
하다고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공감의 시작, 하품
회의 시간에 이번 달 프로젝트의 기획 방향을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설명하는 팀장.
하 대리는 회의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터져 나오는 하품을 참을 수가 없다.
주위를 살펴보니 맞은편에 않은 이들에게 하품이 옮아가고 있다. 심지어 설명을 하던
팀장까지도 예상치 못한 자신의 모습에 당황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하품을 한다.
다른 생리 현상과 달리 하품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전염성이 있다. 하품의 전염을
진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품이 집단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여 구성원들이 같은 행동을
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적의 출현이나 행동의 시작, 취침 등을 전체
구성원에게 하품으로 전달하여 알렸다는 것이다.
뇌 연구자 스티븐 플래텍Steven Platek과 동료 연구자들은 하품의 전염성을 공감의
행위로 파악한다. 다른 이의 행동과 감정을 잘 이해하고 동조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쉽게 하품에 전염된다. 하품을 할 때 뇌의 특정한 영역이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그의 연구는 공감의 감정이 생길 때도 뇌의 같은 부위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얼굴 근육을 펴주며, 코와 귀 사이를 연결하는 귀 안쪽의 달팽이관
을 열어 중이의 압력을 조절하는 등 행위자체만으로도 건강한 하품.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하품을 민망하다고 애써 참지 말고 시원하게 발산하자.
출처 : 브레인 미디어www.brainmedia.co.kr 글·박영선 pysun@brai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