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놀 줄 아는 뇌'가 잘 된다더라
내가 아는 K가 들려준 이야기로 이 글의 머리말을 연다. 시끄러운 것을 딱 질색하는
어느 할아버지가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집앞
공터는 동네 꼬마들 세상이었다. 소란스러웠다. 대략난감한 상황에서 할아버지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는 대신, 꼬마들을 불러 모아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매일 이 공터에서 놀면 용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 뭐, 아이들
이야 신났지. 늘 하던 대로 놀 뿐인데 용돈까지 받으니.
그런데 날마다 정해진 용돈을 주던 할아버지, 어느 날부터 용돈을 줄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가진 돈이 바닥났어. 더 이상 줄 용돈이 없구나. 그냥 놀면 안 되겠니?”라고
부탁한다. 아이들의 반응은? “용돈을 주지 않으면 더 이상은 놀 수 없어요!” 투덜거리며
공터를 떠났다. ‘아, 조용해졌다!’ 할아버지,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를 그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심리학에서 동기와 보상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 예화다. 놀이의 즐거움이라는 자발적인
동기가 용돈이라는 보상으로 전환되자, 아이들은 놀이의 순수한 유희성을 상실했다.
K는 얼마 전, 이 이야기를 듣고 순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단다. K는 본업 외에
프리랜스 작가로도 활동한다. K의 처음 글쓰기는 자기가 갖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나누는 즐거움에서 시작됐다. 그 일은 생활 전반에 활력과 그리고 새로운 꿈을 갖게
했단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원고료가 높아질수록 글 쓰는 맛이 생기더란다. 이젠 보상에
중독되어 원고료 없이 써야 하는 글은 잘 써지지도 않는다고 우스개 말을 내뱉었다.
이어 우린 최근 출판계를 강타하고 있는 소위 뜨는 트렌드인 ‘행복’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 날 인정해주고 좋은 평가를 해줘서 힘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삶의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서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감각을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내밀한 화제로까지 옮겨갔던 것 같다.
그때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글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 아는 식상한 결론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실천으로 옮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강조!) ‘당신은 그리고 나는 진정 행복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으니까’이다.
영화 배우 우피 골드버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겐 너희도 중요하지만 일도 중요하다는 걸 이야기해줬죠.
그때는 아이들이 어리지만 제 말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았죠. 그 나이에는 그런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아이들은 이미 상처받았죠. 그러나
후회하진 않아요. 내가 배우로서의 삶을 포기했다면, 나는 불행하다고 느꼈을 테고,
불행한 엄마만큼 더 위험한 환경은 없으니까요.”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마찬가지. 아이와 부모의 뇌세포는 네트워크를 이루며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끊임없이 공명한다. 부모의 불행한 에너지가 아이의 뇌신경세포를 자극
하면 아이의 뇌세포는 불행한 호르몬에 젖어든다. 아, 그래서 ‘부모 노릇하기 참 힘들다!’
는 소리는 모든 부모들이 반드시 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하소연이다. 정말 나를 잘
추스르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제대로 책임지고 돌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잘 추스르기 위한 방법으로 유희의 힘을 키우라고 권하고 싶다. 유희遊戱는
말 그대로 즐겁게 노는 거다. 그것도 아이처럼 순수하게 놀이에 몰입하는 것이다.
물론 유희감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대상에 대해 전문적으로 깊게 파고드는 것에서
유희를 느낄 수도 있고, 작은 취미 생활을 통해서 유희를 느낄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그것이 무엇이든 유희의 힘이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뇌를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게
한다는 점이다. 더 늦기 전에 뭐든 해보고 싶은 것을 시작해보자. 이 감각은 삶 전반의
자발성에 영향을 미친다. 유희감각으로 깨어 있는 뇌는 작은 것에도 흥미를 가지며,
활력이 넘치고,유연하게 열려 있으며,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리고 자발적인 동기가 작동
될 때 우리 뇌는 이성 뇌와 감정 뇌를 넘어, 무의식의 원시적인 생명력으로 너울거리는
뇌간의 힘까지 총동원해 활용한다. 한마디로 좋게, 제대로, 잘, 미친 경지에 이른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아이 안에 숨어 있는 자발적인 동기를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중요
하다. 아이가 학습을 포함한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 외부의 평가에 의해 움직인다면
경쟁에 초점이 맞추어져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쉽게 무기력해지거나 과제를 포기하기
쉽다.
그러나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일 때는 경쟁이 아닌 본인이 도달하고 싶은 목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실패를 해도 다시 도전한다.
그러니 아이에게 뭔가 하라고 강요하기 전에, 유희를 즐기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자.
이것이 아이의 유희력을 키우는 데 가장 기본적인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다음 아이가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게끔 도와주자. 관찰하고 지켜봐야 한다.
(‘왕인내심’이 요구된다!) 그리고 관심을 보이는 것에는 무조건 칭찬해주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주는 대화를 나눈다. 혹은 함께 관심 분야를 즐긴다면 금상첨화다.
다시 한 번 우리 뇌에게 물어보자. 아이가 살아가면서 외적 보상에 길들여져 무기력과
절망을 학습하길 바라는가? 혹은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도전과 성장을 학습하길 바라는가.
당신의 답을 듣기 전에, 글의 말미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가운데 한 구절을 옮긴다.
음미해보시길.
‘너의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자기다운 삶을 갈망하는 삶의 아들,
딸들이다.’
출처 : 브레인 미디어 (www.brainmedia.co.kr) 글 : 곽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