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수
인터넷에 떠도는 ‘알파벳 괴담’을 두고 경찰이 진상 파악에 나섰다고 한다. 서울
의 오피스텔, 원룸 현관문 옆에 x, α, β 등 뜻을 알 수 없는 표시가 잇달아 발견
되고, 여성을 노린 범죄용이라는 추측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어서다. 이런
해괴한 사건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을 연상시킨다. 알리바바의 영특한 여자
하인은 도둑이 몰래 표시한 ‘X’를 마을 전체 대문에 똑같이 그려넣어 그 의도를
무력화시켰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발견된 기호들이 주로 미지수와 관련 있다는 점이다. x는
방정식에서 구하려는 미지수로 쓰인다. α와 β는 2차방정식을 풀어 얻는 근
(또는 해)으로 통용된다. 하긴 표시한 자의 의도를 알아내는 일은 방정식 풀기
와 비슷하다. 각 기호를 만족시키는 거주자들의 공통 특징을 파악해야 단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 혹은 대수(代數)의 역사에서 미지수 발명은 획기적인 전환점이다. ‘이것
에서 이것을 더하면 이것이 된다’라는 평서문을 ‘이것에 무엇을 더하면 이것이
되는가?’라는 의문문으로 바꿨을 뿐인데, 계산법과 상상력의 비약을 불러왔다.
(존 더비셔, ‘미지수, 상상의 역사’) 이미 4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등지에서는 이런 발상이 시작됐다. 그러나 중세까지도 미지수를 기호 아닌
일상어로 설명하다보니 간단한 방정식 하나만으로 책 한 페이지를 채울 정도
였다.
미지수를 x로 처음 표기한 사람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였다.
자신의 저서를 출간할 때 출판업자가 사용빈도가 낮아 남아도는 알파벳 활자
x, y, z 중에서 골랐다는 설이 유력하다. 숫자를 문자·기호로 대체한 아이디어
는 수식을 간결화한 것은 물론, 사고를 추상화 단계로 끌어올렸다.
기실 미지수는 모르면서도 아는 것이다. 자신이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지향점
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 미지수를 구하기 위해 방정식을 만들고 유용한 해법을
끌어오는 것은 자기 몫이다. 그 과정에서 경험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새해 관문에도 숱한 미지수들이 기다리고 있다. 세종시·4대강 문제
일 수 있고, 출구전략과 더블딥일 수 있고, 기후변화 같은 전지구적 변수일 수도
있다. 그 추이를 좇아 전전긍긍·일희일비하는 건 부질없다. 주체적으로 미지수들
을 엮어 고차방정식을 세우고 기회로 활용하는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상책일 것
이다.
문화일보 [김회평 논설위원] 2009-12-28일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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