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는 러시아 수학자 2명을 포함해 4명이었다. 그중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상트페
테르부르크 출신 그리고리 페렐만이었다. 그는 20세기 수학계 최대 난제 중 하나였던
'푸앵카레 추측'을 100년 만에 풀어내는 업적으로 일찌감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었다.
▶그러나 페렐만은 필즈상 수상을 거부하며 수상식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는 미국
클레이수학연구소가 수학의 7대 미해결 문제에 내건 100만달러 상금도 거부했다.
심지어 동료 수학자들과의 연락도 끊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서방 수학자들이 100년
이나 풀지 못한 문제를 어떻게 러시아 수학자가 해결했을까.
▶1941년 나치 독일 침공으로 초토화된 소련 공군은 민간 항공기를 폭격기로 개조
했지만 민항기 속도가 느려 폭탄을 목표물에 맞힐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게
수학자들이었다. 여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스탈린은 전후 첨단무기 개발·연구에
수학자들을 대거 동원하면서 이들을 우대했다. 안정된 직장과 급여, 아파트·차량·
식료품을 제공하며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 언론인 마사 게센은 최근
'완벽한 계산'이라는 책에서 "수학은 스탈린이 숨겨둔 옛 소련의 최대 비밀무기였다"고
했다.
▶실력은 관변 수학자들 못지않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수학자
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탁월한 업적을 내고도 교수직이나 다른 물질적 보상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이들은 더 순수학문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옛 소련의
폐쇄적이고 정체된 체제 속에서 이들은 오랜 시간 난제에 매달려 풀어내고 그래서
동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을 유일한 보람으로 삼았다.
▶페렐만은 이런 비주류 수학자들의 철학과 세계관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그는 1992년
부터 3년간 뉴욕대 수리과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유명대학 교수직 제의를
뿌리치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7년 동안 거의 두문불출하며 풀어낸 푸앵카레
추측의 연구결과를 2002년 인터넷에 올렸다. 서방 수학자 6명이 팀을 구성해 풀이법을
이해하고 검증하는 데만 3년이 걸렸을 정도로 획기적인 업적이었다. 게센은 페렐만이
필즈상 등을 모두 거부한 데 대해 "물질적 보상을 수학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세계 수학계가 실패로 끝난 공산주의의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 조선일보 김기천 논설위원 kc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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