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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노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딜레마랜드 - 교육자료실 [한국의 수학실력과 국가경쟁력]

한국의 수학실력과 국가경쟁력
 
 
다음 글은 "월간 중앙 9월호"에 실린 '심층 진단'의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편집자주---

유네스코는 오는 2000년을 ‘수학의 해’로 선포했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97년 연두교서를 통해 미국을 수학강국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9년째를 맞고 있는 미국의 ‘금융호황’을 뒷받침하는 것도 극도로 발달한 금융수학 덕분이다. 거기에 비춘 우리의 현실은 안쓰럽기만 하다. 현대사회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살펴본다.


▲ 현재 시점에서 미래의 가격을 예측해 지수를 사고 파는 지수선물이 96년 국내 증시에도 도입됐다. 사진은 95년 증권거래소 시장 대리인들이 지수선물시장 개설을 앞두고 도상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의 직설적 한국 비판이 연쇄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한국이 ‘산업사회에도 제대로 도달하지 못했다’면서 ‘영어와 수학 실력이 뒤떨어져 정보화사회로 진입하는 것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 가운데 ‘뒤떨어진 한국의 수학’이란 말이 유난히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도대체 한국의 수학이 뭐 어떻게 뒤떨어졌다는 것일까. 국제대회 성적만 보면 한국은 수학에 있어서 거의 독보적으로 수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당장 지난해 교육부가 공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학년생 학업성취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가입국 16개국 중 평균 6백11점으로 1위, 일본은 5백97점으로 2위였다. 한국이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은 오마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을 ‘수학2등국가’라고 말한 근거는 무엇일까.

이유야 어떻든 우리가 입시용으로만 생각하고 제껴 놨던 ‘수학’문제를 대중 앞에 불쑥 꺼내놓아 주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세기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한번 짚어야 할 문제라고, 기자는 평소 생각해왔다. 기자의 ‘말문’을 열게 해준 셈이다. 현대사회에서 수학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 선물시장은 고도의 ‘수학게임장’이다. 거래하는 프로그램 자체가 고난이도의 수식계산으로 짜여진 것들이다. 그런 ‘골치아픈’ 게임장에서 영국 베어링은행의 젊은 트레이더 닉 리슨(95년 당시 25세)은 은행의 입장에서는 보물단지였다. 그는 92년 싱가포르 금융선물거래소(SIMEX)에 부임한 지 2년만에 베어링그룹 전체 이익의 5분의 1을 벌어주는 능력을 발휘했다. ‘게임장’에서도 겁없고 뛰어난 트레이더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거래규모가 너무 커지자 94년 8월 본사 감사팀이 그를 조사했다. 별로 위험하다고 할 만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위험한 흔적은 뚜렷이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은행으로서는 그게 실수였다.

사실 리슨은 앞서 그해 1월부터 ‘스트래들’이라는 매우 위험한 게임을 시작한 상태였다. 이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주가지수가 ‘현재 수준’ 근처에서 작은 폭으로 움직이면 돈을 따지만, 아래 위 어느 쪽으로든 일정 범위를 벗어나 진폭이 커지면 엄청난 손실을 입는 계약이었다. 이처럼 위험한 거래를 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리슨은 가명계좌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 같았다. 일본의 기관투자가들이 닛케이지수 19,000∼20,000 사이에서 오르내리도록 떠받쳤준 덕분이었다. 이에 간이 커진 리슨은 진짜 배팅을 시작했다. 장차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닛케이 선물을 마구 사들였다. 그런데 천재지변이 났다. 95년 1월17일 일본의 효고(兵庫)현에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주가는 며칠 뒤 1,000포인트나 빠졌다. 리슨으로서는 만회를 생각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거듭 닛케이 선물을 사들였다. ‘막판뒤집기’를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다. 대실패였다.

1월27일 SIMEX측으로부터 걱정하는 편지를 받은 베어링은행 본사는 리슨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엄청난 누적손실이 발견됐다. 조사 결과는 곧바로 본사 상층부에 보고됐다. 이튿날 베어링 회장은 이사회를 소집했다. 문제의 가명계좌에 누적된 손실은 8억6천만파운드(13억달러)였다. 참석자들은 경악했다. 은행은 얼마 후 문을 닫았다. 금융시장에서 보여준 수학게임 ‘한탕’의 위력이었다.

◎ 올해로 56세인 존 게이지는 청년 시절 열렬한 학생운동가였다.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에 재학중이던 69년 그는 학생 수십만명을 이끌고 워싱턴에서 대대적인 반전집회를 열었다. 이후 의회에서 보좌관 등으로 활동했던 그는 그런 대중적 방식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그는 학업에 파묻혔다.

박사학위까지 마친 그는 82년 자신의 친구들과 지금은 유명해진 ‘선 마이크로시스템스’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고성능 컴퓨터개발 회사로, 존은 컴퓨터를 이용해 정보화운동을 펼쳐 현실사회를 변혁시키려고 생각했다. 그의 능력에 힘입어 회사는 크게 성장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인터넷 서버는 세계를 리드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경영에 전혀 간여하지 않고 연구하는 데만 몰두했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그가 개발한 네트워크 전용 컴퓨터언어 자바(Java)는 인터넷의 각종 응용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각광받고 있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와 IBM사도 이 기술을 채택할 정도다. 그의 전공은 경제학과 수학이었고 학위는 수학박사였다.

◎ 암호학자들은 2차대전의 승패를 갈랐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바로 무기가 아닌 암호였다고 주장한다. “암호해독자”라는 책의 저자 데이비드 칸에 따르면 미국은 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다는 사실을 암호해독으로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체 했다고 회고한다.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명분도 챙기면서 동시에 ‘우리는 너희들 암호를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고 속여넘기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영국 역시 이와 비슷하게 독일의 공습을 알고도 수천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희생시키면서 암호를 해독하지 못하는 것처럼 속였다고 한다.

정보의 암호화와 해독을 둘러싼 국가간의 경쟁은 극비보안으로 내막이 가려져 있는 상태. 현재 미 안전보장국(NSA)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학자 집단이 암호 해독 및 정보 분석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보를 암호화하는 것도, 해독하는 것도 그 핵심 이론은 수학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타원이론이 암호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의 암호 기술은 미국의 3분의 2 정도라고 한다.

◎ 뉴욕 월가 중심부에 위치한 미국 증권거래소(AMEX) 신제품 개발부에서 일하는 클리포드 J 웨버는 ‘아이비 리그’에 속한 다트머스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 실험실에 있었으나 답답하다며 뛰쳐나와 금융계에 뛰어들었다. 뉴저지의 연금 컨설팅회사에서 3년반 동안 금융업무를 익혔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수학과 컴퓨터에 익숙했다. 그러나 아직 월가에 뛰어들어 일하기에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펜실베이니아대학에 입학해 응용수학을 전공하고 나중에는 과학·공학석사(MSE) 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봉은 ‘1백만달러 이하’로 밝힐 수는 없다고….

흔히 수학은 ‘배고픈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리나라만의 얘기인 것 같다. 세계적으로 수학은 이미 그 자체가 금융시장을 휘젓는 강력한 무기이고, 그렇게 금융시장에 포진한 수학자들은 배가 터질 듯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것도 20대와 30대 젊은 나이다.

고난도의 수학적 수식과 프로그램들이 세계 금융시장을 누비면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 거래를 가능케 하고 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에서 수학자 한사람이 벌어들이거나 아차 실수로 까먹는 금액이 자동차 몇만대 수출 규모에 맞먹는 세상이 됐다. 물건 열심히 만들어 1년 내내 외국으로 뛰어다니며 팔아 1천원을 벌어도, 금융시장에서의 순간적인 실수 한번으로 2천원을 까먹으면 그 나라는 한햇동안 헛고생만 한 꼴이 된다.

월街의 금융수학 그룹

세계경제의 중심지 미국 월 스트리트에는 수학자들이 대거 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의 수학박사들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서성이는 동안 월 스트리트에서는 1천여명의 박사급 수학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친목단체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고수익이 보장되는 오늘날의 금융계에서, 말 그대로 또하나의 전문금융인 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분야에서 국가간 전쟁은 이제 ‘천재들의 격전장’이 돼가고 있다. 국제 자본시장도 마찬가지다. 수학과 금융이 어우러져 국가간 천문학적 액수가 정신없이 거래되는 세상에서 우수한 수학두뇌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뛰어서 1백원 벌고 앉아서 1천원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일어나기 쉬운 세상이다. 그런 나라는 오마에 겐이치가 표현한 것처럼 ‘영원한 하도급 나라’ 아니 ‘영원한 봉’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수학은 단순한 기초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서 엄연히 살아 움직이는 프로의 활동영역이다. 수학의 쓰임새는 앞에서 본 사례들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서울대 수학과 지동표 교수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프리드만을 비롯해 60여명의 순수 수학자를 고용해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면서 “정보와 자본력, 최첨단 금융기법을 앞세운 서구 금융기관에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불문가지며 엄청난 국부가 해외로 유출될 것이 분명하다. 금융수학의 노하우는 절대 가르쳐 주지도 않고, 사올 수도 없는 것을 생각하면 수학의 우위가 바로 국가경쟁력의 우위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수학 자체만으로 오늘 그 위상을 차지한 것은 아니다. 수학이 금융·군사·영상·생명공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독자적인 실용학문으로 우뚝 선 것은 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보화사회에서는 경험이나 관록, 또는 기존의 과학적 실험이나 연구방법으로는 도저히 모여진 정보를 제대로 분석해 내기가 쉽지도 않고, 분석해서 어떤 결론을 도출한다고 해도 그것의 ‘품질’은 미지수다. 팽팽 돌아가는 상황과 수많은 요인들을 일일이 따져 보고 어떤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경우의 수’가 원체 많아지고, 정보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동안 또다른 상황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확률과 통계를 내는 데 필요한 복잡하고 수많은 계산은 컴퓨터가 맡게 됐다. 수학의 실천방법이 바뀐 것이다. 인간을 능가하는 계산능력을 가진 컴퓨터와 인간의 창조성이 시너지효과를 내며 협력적인 관계가 된 것이다.

처음에 수학자들은 컴퓨터가 수학의 보조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컴퓨터가 그렇게까지 발전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그것이 인류의 삶과 미래를 이토록 빨리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컴퓨터는 갈수록 인간의 창의성마저 넘어서는 또다른 능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 바로 미래예측과 ‘전략적 행동’이다. 가령 위기상황 때 한 개인이 처해 있는 주변 상황 요인들을 모두 계수화해 컴퓨터에 넣어 돌리면 그 위기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가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요체는 역시 인간 개개인에 내재된 논리적 분석력이다. 고도로 정보분석 훈련이 돼 있는 인적(人的) 자원이 필수다.

최근 한국을 찾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김석기 박사는 “정보화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학”이라고 전제하고 “컴퓨터공학자보다 수학자가 중시되는 이유는 정보를 분석, 가공,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수학자들의 분석력을 강조했다. 서울대 수학과 강석진 교수도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갖는 강점은 위기상황에 대처해 순간적인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라면서 “금융수학 등 첨단분야일수록 주어진 조건 하에서 가장 빠르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훈련이 돼 있다”고 말한다.

44년 일본 함대의 이동을 추적, 격침시킨 미군의 무용담은 수학자들의 논리적 사고와 분석력의 개가였다. 아직 컴퓨터도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미국 태평양 해군사령부 지휘부는 절대절명의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당시 미국은 남지나해에서 일본의 오키나와에 걸친 긴 전선(前線) 위의 섬들을 하나하나 점령해 나가면서 일본을 압박하는 이른바 ‘징검다리 작전’을 전개했다. 다수의 섬을 분산,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은 이런 미국의 공격에 역부족이었다. 섬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미군은 오키나와를 향해 한걸음씩 접근했다.

대본영은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전선에 흩어져 있는 일본군에 대대적인 병력과 병참(兵站)을 지원해야 했다. 함대를 동원한 지원 루트는 두가지. 하나는 일본 본토를 출발해 중국 해안을 따라 동지나해를 거쳐 가는 북(北)루트, 다른 하나는 그보다 훨씬 아래쪽 해상로를 통하는 남(南)루트였다. 지원작전은 물론 미군에 들키지 않도록 극비보안 속에 진행돼야 했다. 준비가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 어떤 루트를 따라 함대가 이동할 것인가는 수뇌부만의 비밀이었다.

정보수집보다 분석에 비중

미군측이 넋놓고 앉아 있을 리 만무했다. 전황(戰況) 분석과 일본군이 주고받는 암호 해독을 통해 미군 사령부는 일본 대본영이 남양(南洋)의 일본군에 대규모 지원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러나 대본영 수뇌부 몇 사람만 알고 있던 함대 이동의 ‘시기’와 ‘루트’는 오리무중이었다. 만약 일본이 지원작전에 성공하고 반격태세로 나서면 전세는 또다시 미궁(迷宮) 상태에 빠진다. 감시위성도 없던 시절이었다.

 

▲ 텍사스에 있는 월코트학교에서 지도교사를 통해 수학 교육법인 구몬수학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
당시 미 해군사령부가 보유하고 있던 공군의 능력으로는 양쪽 루트를 24시간 감시할 수도, 또 양쪽 루트를 동시에 공격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적절한 시기에 한 루트를 골라 초계(哨戒)하고 공격해야 했다. 사령부는 국가보안국(NSA)에 지원을 요청했다.

NSA는 알려진 것처럼 수학자들의 거대한 집합체(지금도 산하에 수천여명의 수학자로 구성된 NCSC, 즉 전산망 보안센터를 두고 있다)로, 수집된 첩보와 정보를 분석해 일정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세계 최강의 실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기관이다. 전선(前線)과 전황, 대본영의 움직임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집결됐다. 해류(海流)의 방향과 일대의 기상 관련 자료들도 포함됐다.

만약 일본군이라면? 가장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작전을 방해할 미 공군을 염두에 두고 모든 작전을 진행할 것이다. 따라서 미 전투기가 가장 비행하기 어려운 시점을 우선 택할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일본이 가장 전투기가 뜨기 좋은 시점과 루트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발각될 경우’를 감안해, 그래도 역시 전투기가 가장 공격하기 어려운 상황을 D데이로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암호 해독과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확률 게임이었다. 언제, 어떤 루트를 택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숱한 ‘경우의 수’가 있었다. 그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지워 나가는 작업이 바로 수학자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그럴 확률이 더 낮은’것부터 하나하나 지워 나갔다.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됐다. ‘몇월 몇일 몇시부터 같은 달 몇일 몇시 사이 유력. 이동 루트는 북쪽이 좀더 가능성이 높지만 권고할 만한 차이는 아님.’ 일본 함대는 과연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이윽고 ‘자료’에서 제시한 시기가 임박했다. 지휘부는 결단해야 했다. “북쪽 루트를 봉쇄하라.”

‘자료’에서 제시된 기간 내내 북쪽 루트에 대한 집중 초계(哨戒)와 공격 태세가 준비됐다. 결과는? NSA의 분석과 지휘부의 결단은 멋진 작품(?)으로 완결됐다. 북쪽 루트로 들어섰던 일본의 지원 함대는 미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지원작전은 좌절됐다. 일본군은 고립됐고 남방(南方) 전선은 미군의 손 안에 들어왔다. 대본영은 각 섬에 흩어져 있던 일본 부대에 ‘최후 항전으로 옥쇄(玉碎)하라’는 전문을 타전하고 손을 놔야 했다.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자료에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하거나 일정한 배열, 수식, 진전된 정보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훈련된 두뇌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정보화사회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자리는 바로 거기에 있다. 수학은 ‘리스크 관리’와 ‘정보분석’의 핵심도구인 것이다.
인질 테러범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절대 협상 불가’방침은 수학이 어떻게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최종 결론을 분석해 내고, 국가의 전략적 행동을 도출시키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72년 뮌헨올림픽 개최 하루 전인 9월5일 팔레스타인 무장게릴라 테러범들이 선수촌을 습격, 이스라엘 선수단을 몰살시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검은 9월단’사건이다. 67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6일전쟁’이후 본격화된 아랍-이스라엘 진영의 갈등이 불러온 최대의 비극이었다.

“인질 테러범과는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본부를 두고 있던 ‘검은 9월단’은 그로부터 몇달 뒤 현 이스라엘 총리인 에후드 바락 특공대의 공격으로 전멸됐다. ‘범인’은 응징됐지만 이 사건은 서방세계, 특히 이스라엘을 뒷받치고 있던 미국에 커다란 고민을 안겨 주었다.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한 테러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미국의 반응에 주목했다.

 

▲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평생교육기관인 컴퓨터 학습센터에서 성인들이 컴퓨터를 배우는 데 열중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개혁도 평생교육 체제가 확립된 학습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검은 9월단’사건 얼마 후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국제적인 테러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공식 천명했다. 그것이 바로 저 유명한 ‘어떤 상황에서도 인질 테러범과의 협상은 없다’는 것이었다. 인질 테러범에 대해서는 어떤 요구도 들어주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전통적으로 미 행정부는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인명(人命)을 살리는 데 최우선의 가치를 뒀다. 그러나 ‘테러와의 협상은 없다’는 말은 곧 ‘인질의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국민의 생명을 가장 앞장서서 보호해야 할 국가가 어떻게 이처럼 잔인한 입장을 내세운 것일까.

흔히 지도자의 고뇌와 결단의 정수(精粹)처럼 비쳐지는 이 말도 사실은 치밀한 수학적 과정을 통해 추출된 것이다. 검은 9월단 사건 이후 태스크포스로 조직된 미 행정부내의 수학자팀이 온갖 경우의 수를 따져 그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압박하면서, 미래의 테러 사건 예방 효과까지 겨냥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수학자들은 ①테러범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인질들이 살지 못하는 경우 ②테러범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인질을 살리는 경우 ③테러범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인질들이 살지 못하는 경우 ④테러범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인질들이 살지 못하는 경우로 매트릭스를 설정했다. 이번에는 거꾸로 테러범의 입장에서도 ①우리의 입장을 알아달라 ②정치적 요구(가령 동료석방)를 들어달라 ③안전한 퇴각을 보장하라 ④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는 상황을 설정했다.

이 두가지의 매트릭스를 기본으로 여기에 다시 발생 가능한 기타 상황들이 가외변수로 추가됐다. 미국 정부의 태도에 따라 테러범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또는 어떤 심리상태가 될 것인가에 대한 수십가지의 ‘경우의 수’가 만들어졌다. 수학자들은 그 가운데 ‘그럴 가능성이 더 적은’것부터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거기서 끝까지 남은 것이 바로 ‘테러범과는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강경방침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80년대 이후 인질테러 사건은 이전에 비해 거의 사라졌다. 이후 30여년 동안 이러한 입장은 미국, 나아가 세계의 대테러 원칙으로 자리잡았고 테러를 가하는 쪽이든 당하는 쪽이든 뇌리에 깊이깊이 각인됐다.

국가는 또는 국가지도자는 싫든 좋든 일반인들보다 자주 중대한 ‘결단의 순간’에 직면한다. 위의 사례는 미국의 지도자가 어떻게 그런 결단의 순간을 헤쳐나가는지 잠복된 메커니즘을 알게 한다. 그것은 결단이라기보다 냉철한 판단에 가깝다.
미국은 이런 전통 아래 수학의 실용적 가치와 필요성을 가장 먼저 인정하고 대처해온 나라다. 97년 클린턴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21세기 미국의 수학교육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적 통신회사인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연구원 중 20%가 수학자다.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뜨거운 가슴과 주먹구구로 ‘이것이다’라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들을 뒤섞어 생겨날 수 있는 최대의 ‘경우의 수’를 설정한다. 그리고 거기서 가장 가능성이 적은 것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다. 마지막에 하나가 남든, 둘이 남든 그런 과정을 거쳐 ‘가장 적절한 전략적 행동’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명문대에서 문과나 이과의 계열구분 없이 수학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장차 사회의 지도층에 포진할 젊은 학생들에게 수학이 논리적 사고력을 갖게 하고 전략적 판단력을 길러준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시키고 사회로 내보내는 것이다.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 수학과에 재직 중인 강석진(38) 교수는 자신이 예일대에 처음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던 한가지 기억을 지금도 선명하게 갖고 있다. 입학 얼마 후 이 학교의 학과별 커리큘럼을 뒤적이던 그는 우선 전교생이 수학을 교양필수 과목으로 이수하도록 해놓은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떤 수준의 것이든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그러나 다시 책을 뒤적여 나가던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문과 커리큘럼에 ‘Differential Calculus·Integral Calculus’라고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미분·적분이다.

“제 전공이 수학이니 그런 게 눈에 확 띄더군요.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미국 중·고교생들은 일찍부터 문과·이과로 나뉘어 문과는 중학 이후 우리 같은 수학 공부를 전혀 안 한다’ ‘그저 산수만 배우고 만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대학에서 덜커덕 수학과 만나게 돼 있는 거예요. 왜 수학을 강조하는지 어렴풋이는 짐작하겠는데 그래도 왜 영문과에서 미분·적분까지 해야 하는지 의아했어요.”

영문과도 미분·적분 필수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문학과 수학이 ‘자유로운 사고와 엄밀한 논리’라는 공통의 바탕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계속 수학과 친밀해지도록 해놓은 것이다. 단 학기초 미리 배치고사(Placement Test)를 치러 클라스를 나누는 배려를 하고 있다. 학과 수준은 우리나라로 치면 인문·계 고교에서 공부하는 수학I 수준. 만만치 않다. 이과의 경우는 이보다 더 고차원의 미분·적분을 배운다. MIT는 인문사회계 학생들도 1학년 때는 화학 1과목, 물리 2과목, 수학 2과목, 그리고 실험 1과목을 이수토록 하고 있다.

강교수는 “가뜩이나 학습량이 많은 명문대생들에게 (특히 문과의 경우) 수학까지 부담지우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라면서 “수학을 잘하든 못하든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난 엘리트들이 적어도 한가지 사실만은 가슴과 머리에 간직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간직하는가.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우리나라 입시수학처럼 가르치고 공부하는 것과는 딴판이므로) 즐겁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인지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수학이 갖는 국가적 위상과 기능이, 세계지도 위에서는 그렇게 중차대한 대접을 받고 있는데 비해 국내에서는 수학이 처해 있는 현실이 안쓰러울 정도다.
고교생들이 수학에 흥미를 잃고 대학의 수학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이미 10여년 동안 계속돼 왔는데도 대책은 없다. 한 수학도는 “수학시험을 못봐서 할 수 없이 수학과에 왔다”고 자조(自嘲)했다.

각 대학에서 인원 축소 얘기만 나오면 수학과를 우선순위로 꼽는다. 취직할 곳도 마땅찮고 국책연구원이나 기업 부설 연구원도 없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학과를 지원하는 학생이 줄어들면서 그나마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설 곳이 없다.

최근 대한수학회(회장 김성기)가 지난 93년 이후 수학 박사 학위 취득자 4백60명의 현주소를 조사해 보니 무려 2백4명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에 겐이치가 이런 우리의 현실을 미리 염탐한 것은 아닐까. 초·중·고 시절에는 국제적인 우등생인 우리의 수학 실력이 위로 올라갈수록 선진국에 뒤떨어지는 이유도 수학에 대한 이런 사회적 푸대접 때문이 아닐까.

수학을 육성하고 강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국책 수학연구소를 설치해 국가적 수학과제를 연구하게 할 수도 있고, 수학에 대한 공적·사적 교육제도를 강화하거나 조기교육 강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수학과목 외에 별도로 수학사회학 같은 것을 두어 왜 수학을 배우는가에 대한 체계적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방법이 없거나 몰라서 수학 교육을 그처럼 방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수학이 갖는 기능과 중요성에 대한 국민 전체, 아니 지도자 한 사람의 결단이 아쉬운 것이다.

지난 95년 7월 “중앙일보”가 마련한 ‘파생금융상품 국제세미나’에 강연차 한국에 왔던 미국 헤지펀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존 메리워더 사장의 얘기는 지금도 기자의 뇌리에 똑똑히 각인돼 있다. “한국에 개설될 주가지수 선물시장의 성공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문인력이다. 옵션이나 선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학적 바탕과 상상력 그리고 위험 관리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기자가 보기에 더욱 중요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문제는 경영층이, 자신은 비록 기술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의지를 가지고 밀어 주느냐에 달려 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치환(置換)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권력자나 지도층이 자신은 비록 기술적인 내용을 알지 못해도 수학에 대해 어느 정도 의지를 가지고 밀어주느냐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수학은 국가정책의 전략적 결정, 기업경영의 전략적 행동을 뒷받침하는 필수도구다. 또 엄청난 규모로 시시각각 치열하게 벌어지는 세계 금융전쟁의 주무기로 국부를 창출하거나 외국의 공격으로부터 국부를 방어한다. 수학을 무엇 때문에 공부해야 하는지, 수학이 국가에 어떻게 힘이 되는지는 그처럼 명확한 것이다. 수학을 국가의 생명줄처럼 여기고, 국립 수학교육원이라도 두어 천재·수재적 수학자들을 길러내야 할 당위성이 거기 있다.

                                                            출처 : 수리과학연구 정보센터 http://math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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